건강한 식사법이 ‘자극’(irritation)이 되는 집단

Make it stand out. Almost things were different before 10Y.

악에 받친, 재수 없는, 배알이 꼬이는, 내가 갖지 못한 것, 스스로 획득 못한 것, 비정상적인, 광기어린 , 기능하지 못하는 머리는 혹인가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일하셨다>

식사. 먹는 일(食事)이라 적는다. 먹는 것이 ‘일’이었던 시절에서 차고 넘치는 현재다.

우리 집은 특별한 날에만 외식했다. 아버지가 판단한 특별한 날. 그 특별한 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외식을 자주 하는 다른 집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아버지는 그것을 미안해 하기도 한 것 같다. 대신 아버지는 손수 음식을 만들었다. 또한 먹는 일에 투정을 부리는 것에는 엄격한 교육을 받은 나는, 먹는 일에 까다롭지 않았다. 주는 음식은 감사히, 맛있게 먹는 것이 예의라고 알았다. 그와 닮은 음식에 길들여졌다.

건강이 좋지 않은 나날들이 있었다. 식사 관리의 필요를 처음, 느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는 거친 음식과 콩류 섭취, 그리고 알코올 섭취의 자제, 노년의 육류(단백질) 섭취 권장, 무엇보다 단순당과 정제 곡물의 제한을 강조하는 식사법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여느 할리우드 스타들의 현란해 보이는 식이요법이나, 어쩐지 익숙지 않았던 일본식 식사법들보다 직관적이라고 여겼고, ‘인스턴트’(단당류)가 주를 이루는 요즘의 핵심을 관통하는 식사법이라고 생각했다.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먹은 것들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 동안, 나같은 사람도 상당한 양의 당을 섭취했다. 조금씩 주전부리만 줄여 나간 것이, 언제부턴가, 소식(少食)이 편한 체질이 되었다. 라면은 1년에 두어 번 정도 먹어도 즐거웠고, 그 시간동안 음식에 대한 통찰 같은 것을 얻은 것 같았다. 조금 까다로워져도 좋았다. 질 좋은 음식은 중요하고, 식사예절을 아우르는 식사 ‘환경’은 질 좋은 음식을 만드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먹고 사는 일이 다 같은 줄만 알았던, 가까운 과거에의 각성이 일어났다. 나의 소식(少食)에 직장 사람들은 위협을 느꼈다. 함께 모여 먹는 자리에서 ‘남의 이야기’를 하는 어떤 부류들의 대화 주제는, 대체로 사람을 소비하는(먹는) 내용이다. 그 ‘남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로 확장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던 두어 명은 그 식사 자리에서 밥을 거의 먹지 못했다.

‘라면을 먹지 않는다’가 아니었다. 좋아하던 라면을 줄였다, 가 요지였다. 그것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치명적인 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날뛰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 “굶주림”에 권력마저 부여했나.

정희원 교수는 현재 몹시 자극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법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그 누구보다 희망하는 중에, 내게도 비슷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요컨데, ‘웰니스’에 대한 일부 특정 집단의 거부감은 도를 넘었다. 

와인을 보틀로 사서 마셔본 적 없더라. 정 교수님께서는 와인도 알코올로 분류하셨고, 와인 많이 마시는 프랑스 사람들은 야채 섭취가 그만큼 상당하기 때문에, 알코올의 해로움이 상쇄되는 거라고 하셨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리도 절제했고, 불면에 시달렸고, 가끔 한 잔씩 즐기던 것을 몇 해간 한 모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느 날,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에서 나쁘지 않은 프랑스 와인 한 병을 샀다. 그 동안의 전혀 단순하지 않았던 절제에 대한 보상처럼. 여느 때는 일 마치고, 보드카나 위스키 한 잔 정도 가벼이 즐길 줄 알았던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건, 알코올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다.

고달파도, ‘한결같은 노동’은 사람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이리도 가난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이와 성별, 지위막하를 막론하고, 마흔의, 지금의 나로선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는 폭력이 팽배해 있음을 감지해왔다. 타인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사람들의 야만이 카니발이 될 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두려웠다. 무엇이 어찌 됐던, 먹는 일은 생존을 위한 일이며, 숭고하다. 나의 소식(少食)에 지독한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패턴을 따라가며, 가만히 있다가는 살해당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판단에 이르자, 움직여야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배운년’에게 일생동안 느껴온 거북함이란,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늙은이가 될 때까지 뱃가죽 속에 악다구니만이 썩을 대로 썩게 한 무언가였다.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될 즈음부터 나는 아버지의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마흔이 되고서야, 그제서야 스스로가 답답했다. 그것이 최근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Edited on 10th FEB., 2026, rece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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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유라는, 쉬움의 위험